
여름이 되면 마트 한쪽에 슬그머니 등장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고구마줄기입니다. 지나치기 쉬운 식재료인데, 한번 제대로 볶아두면 그 다음부터는 꼭 챙기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처음 만들었을 때는 평범한 나물볶음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들깨가루가 들어가는 순간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고소하면서도 국물 없는 들깨탕 같은 깊은 맛이 생기고, 고구마줄기 특유의 아삭한 식감과 만나면서 숟가락을 계속 들게 만드는 밑반찬이 됩니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하루 이틀 지날수록 양념이 줄기 속으로 스며들어 맛이 더 깊어지는, 말하자면 조용한 실력자 반찬이에요.
<재료>
고구마줄기 350g
양파 ¼개, 대파 ½개
홍고추 1개, 청양고추 2개
양념
식용유 1큰술, 들기름 1큰술
다진마늘 1큰술, 다진멸치 15마리
맛술 1큰술, 진간장 2큰술
참치액 2큰술, 물 3큰술
들깻가루 2큰술, 참깨 1큰술
식감을 살리는 핵심, 손질과 데치기
고구마줄기를 맛있게 볶으려면 사실 볶기 전 단계가 훨씬 중요합니다. 손질이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먼저 350g의 고구마줄기를 1~2시간 전에 소금물에 담가둡니다. 이렇게 하면 껍질이 한결 수월하게 벗겨집니다.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이 과정만큼은 건너뛰지 않는게 좋아요. 껍질을 벗기지 않으면 볶았을 때 겉면이 질기고 입안에서 실처럼 남는 식감이 생깁니다. 껍질을 벗긴 고구마줄기는 팔팔 끓는 물에 소금 1큰술을 넣고 데칩니다. 여기서 시간 조절이 정말 중요합니다. 너무 짧으면 질기고, 너무 오래 두면 흐물흐물해져서 볶을 때 존재감이 사라져 버려요. 물이 다시 끓어오르고 나서 1~2분 안에 젓가락으로 눌러보아 살짝 부드러운 정도가 느껴지면 바로 꺼내서 찬물에 헹궈야 합니다. 찬물 헹구기는 색을 선명하게 유지시켜주고 여열로 더 익는 것을 막아줍니다. 소금을 넣고 너무 오래 가열하면 색이 탁해지기 때문에 시간 관리에 신경 써주세요. 데친 고구마줄기는 물기를 꽉 짜두어야 볶을 때 기름과 양념이 잘 어우러집니다.
고구마줄기에는 식이섬유와 칼륨, 칼슘이 풍부하게 들어있습니다. 칼륨은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 조절에 도움을 주는 성분이라, 반찬으로 꾸준히 챙겨 먹으면 영양 면에서도 이점이 있는 식재료입니다. 여름철 제철 채소인 만큼 이 시기에 맛있게 먹어두는 것을 권합니다.
고소함의 층위를 만드는 볶음 과정
달궈진 팬에 식용유 1큰술과 들기름 1큰술을 함께 넣습니다. 들기름만 단독으로 쓰면 향은 좋지만 전체적으로 무겁게 느껴질 수 있어요. 식용유와 섞어 쓰면 향은 살리면서도 훨씬 가볍고 균형 잡힌 맛이 납니다.
여기에 다진마늘 1큰술을 먼저 볶아 향을 냅니다. 다진멸치도 함께 약불에서 살짝 볶아주세요. 멸치를 먼저 볶는 이유는 비린내를 날리면서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산을 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큰 멸치보다 잘게 다진 멸치를 쓰면 씹히지 않고 양념 전체에 맛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뭔가 맛있는데?" 싶은 깊은 맛을 만들어줍니다.
양파는 조금 도톰하게 썰어 먼저 볶습니다. 너무 얇으면 볶는 도중 다 녹아버리는데, 어느 정도 두께가 있어야 고구마줄기 사이에서 씹히는 단맛이 살아있어요. 양파가 투명해지기 시작하면 물기를 꽉 짠 고구마줄기를 넣고 함께 볶아줍니다.
간이 부족하다 싶으면 맛소금을 아주 소량 추가하고, 참치액 2큰술과 진간장 2큰술을 넣습니다. 두 가지 모두 간을 지닌 재료이므로 마지막에 반드시 간을 확인해야 합니다. 수분 보충을 위해 물 3큰술을 넣어 볶으면서 익혀주세요. 물을 너무 많이 넣으면 볶음이 아니라 조림처럼 되어버리니 3큰술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국물이 어느 정도 자작하게 남았을 때 들깻가루 2큰술과 들기름 ½큰술을 추가합니다. 들깻가루는 너무 일찍 넣으면 텁텁해질 수 있어서 마무리 단계에 넣는 것이 핵심입니다. 홍고추와 청양고추도 이 단계에서 넣어야 향이 살아있어요. 마지막으로 참깨를 뿌리고 불을 끄면 완성입니다.
들깻가루에는 오메가3 지방산과 로즈마린산이 들어있어 항산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볶음 요리에 들깻가루를 활용하면 영양적으로도 한층 풍부한 반찬이 됩니다.
막 볶아냈을 때는 들기름 향이 먼저 올라오고, 하루가 지나면 양념이 줄기 안으로 스며들어 훨씬 차분하고 깊은 맛이 납니다. 초록 줄기 사이로 빨간 홍고추가 박혀 있어서 반찬통 열 때 기분도 괜찮아지는, 소박하지만 공들인 티가 나는 여름 밑반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