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입맛도 없고 속도 더부룩한 날에는 자극적인 음식보다 채소가 가득한 따뜻한 음식이 생각나요. 그럴 때 제가 자주 만드는 게 바로 배추야채말이찜입니다. 화려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만들고 나면 늘 다시 생각나는 음식이에요. 찜기 뚜껑을 여는 순간 올라오는 배추 향이 정말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준비 재료>
배춧잎 8~10장
새송이버섯 1개
당근 8cm
부추 50g
파프리카 1개
[땅콩버터소스]
땅콩버터 2T
진간장 1T
알룰로스 2T
레몬즙 3T (또는 식초)
물 2T (농도 보며 가감)
배추야채말이찜, 왜 자꾸 생각나는 음식일까요
배추는 익으면 단맛이 훨씬 진해집니다. 배추에 함유된 다당류가 가열되면서 분해되어 단순당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생으로 먹을 때보다 익혔을 때 단맛이 훨씬 강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 새송이버섯을 더하면 식감이 훨씬 풍성해져요. 새송이버섯은 익으면 고기처럼 쫄깃한 식감을 내는데, 이는 버섯 세포벽을 이루는 글루칸 성분이 가열 과정에서 단단하게 응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기 없이도 씹는 맛이 부족하지 않고 만족감이 큽니다.
여기에 아삭한 당근과 향긋한 부추, 달큰한 파프리카까지 더하면 색감도 예쁘고 식감도 지루하지 않아요. 채소마다 익는 속도와 향이 달라서, 마치 각자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작은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집니다. 특히 파프리카에 풍부한 베타카로틴은 지용성이라 살짝 기름과 함께 섭취하거나 익혀서 먹으면 체내 흡수율이 더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는데, 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조건이 충족되는 점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에요.
소스로는 땅콩버터소스를 곁들이는데, 이게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담백한 찜요리에 고소함을 한 번에 끌어올려주거든요. 다만 너무 무겁지 않게 레몬즙으로 산미를 더해주면 훨씬 깔끔한 맛이 나옵니다. 저는 소스를 진하게 만들기보다 약간 묽게 해서, 배추말이에 촉촉하게 스며들도록 먹는 걸 좋아해요.
만드는 과정과 그 안에서 느낀 팁
1. 배춧잎 데치기
끓는 물에 배춧잎을 넣고, 숨만 죽을 정도로 살짝만 데칩니다. 너무 오래 익히지 않는 게 핵심이에요. 오래 데치면 세포벽이 과도하게 파괴되면서 물이 많이 빠져나오고, 식감도 흐물흐물해집니다. 데친 뒤에는 물기를 살짝 눌러 제거해주세요. 그래야 찜할 때 국물이 과하게 생기지 않고 소스와 채소의 맛이 더 잘 살아납니다.
2. 속재료 손질하기
새송이버섯, 당근, 파프리카, 부추를 얇고 길게 채 썰어줍니다. 처음 만들 때는 욕심을 내서 속재료를 너무 많이 넣었다가 배추가 자꾸 터진 적이 있어요. 배추야채말이는 “적당히”가 가장 중요한 요리라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얇고 길게 썰어야 돌돌 말았을 때 단면도 예쁘고 먹기도 편해요. 특히 당근은 너무 두껍게 썰면 다른 채소보다 늦게 익어서 식감이 따로 노는 경우가 생기니, 두께를 비슷하게 맞춰주는 게 좋습니다.
3. 배추에 채소 말기
데친 배춧잎 위에 손질한 채소들을 가지런히 올리고 돌돌 말아줍니다. 이때 부추는 향이 쉽게 날아가는 편이라, 속재료 가운데 부분에 넣어주면 향이 더 오래 살아있어요.
4. 찜기에 찌기
배추말이를 찜기에 올릴 때는 너무 다닥다닥 붙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 공간이 조금 있어야 수증기가 골고루 돌면서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익어요. 한 번은 급한 마음에 빈틈없이 올렸다가, 아래쪽은 축축하고 위쪽은 덜 익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한 김 쉬듯 여유를두고 배열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중불에서 적당히 김이 오르면 익혀줍니다.
5. 땅콩버터소스 만들기
땅콩버터, 진간장, 알룰로스, 레몬즙을 섞고 물을 조금씩 더하며 농도를 맞춥니다.
소스 농도와 맛있게 먹는 방법
땅콩버터소스는 짠맛과 단맛의 균형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진간장을 많이 넣으면 채소의 은은한 단맛이 묻히고, 땅콩버터를 과하게 넣으면 소스가 너무 뻑뻑해져서 채소에 잘 스며들지 않아요. 물은 한 번에 다 넣지 말고 조금씩 더해가며 농도를 맞추는 게 좋습니다. 숟가락으로 떠서 흘렸을 때 리본처럼 부드럽게 떨어지는 정도가 가장 먹기 좋은 농도였어요.
레몬즙 대신 식초를 사용할 경우에는 양을 조금 줄여서 시작하는 걸 추천합니다. 식초는 레몬즙보다 산미가 더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부터 같은 양을 넣으면 산미가 너무 강해져 배추의 단맛이 가려질 수 있어요.
저는 따뜻할 때 먹는 게 가장 맛있다고 느꼈어요. 냉장 보관 후 먹으면 배추에서 수분이 조금씩 빠져나오면서 식감이 처음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남은 배추말이는 전자레인지보다 찜기에 짧게 다시 데워주면 식감과 향이 훨씬 잘 살아나요. 담백하지만 은근히 손이 가는 맛이라, 한 접시 비우고 나면 속까지 깔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 드는 요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