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장고를 열 때마다 자꾸 눈에 밟히는 식재료가 하나씩은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한동안 병아리콩이 그랬습니다. 한 봉지 사다 놓고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한쪽에 묵혀두던 것을 어느 날 문득 또띠아로 만들어봤는데, 그 이후로 식구들이 자꾸 찾는 메뉴가 되어버렸습니다. 밀가루 한 톨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처음엔 저도 꽤 놀랐습니다.
병아리콩, 알고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병아리콩은 일반 콩과 달리 비린 맛이 거의 없고, 삶은 밤처럼 고소한 풍미가 특징입니다. 그래서 갈아서 반죽으로 만들어도 특유의 구수함이 살아있어 별다른 양념 없이도 맛이 납니다.
영양 면에서도 손색이 없습니다. 병아리콩 100g에는 단백질이 약 19g 가까이 들어있고, 식이섬유도 풍부해 포만감이 오래 지속됩니다. 식이섬유는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어 장 건강을 돕고, 콜레스테롤 흡수를 억제하는 데도 기여합니다. 또한 병아리콩에는 저항성 전분이 포함되어 있어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완만하게 조절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여기에 칼슘과 마그네슘, 철분까지 고루 들어있어 뼈 건강이나 빈혈 예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알아두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병아리콩에는 트립신 저해제라는 성분이 들어있어 생으로 또는 덜 익혀 먹으면 소화 효소 작용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충분히 불리고, 완전히 익혀서 드셔야 소화도 잘 되고 영양도 제대로 흡수됩니다. 불림 시간은 최소 8시간, 넉넉하게는 하룻밤 정도가 좋습니다.
반죽부터 굽기까지,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재료는 간단합니다. 충분히 불린 병아리콩 두 컵, 물 세 컵, 소금 반 작은술, 그리고 감자 전분 5큰술입니다.
불린 병아리콩을 믹서에 물과 소금을 함께 넣고 최대한 곱게 갈아줍니다. 이 과정에서 물은 한꺼번에 넣지 말고 조금씩 추가하면서 농도를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목표 농도는 묽은 팬케이크 반죽 정도입니다. 너무 되직하면 팬에 고르게 펴지지 않고, 너무 묽으면 뒤집을 때 찢어지기 쉽습니다.
곱게 갈린 반죽에 감자 전분을 넣어 섞어줍니다. 전분은 단순히 반죽을 묶어주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닙니다. 전분 속 아밀로펙틴이 가열 과정에서 호화되면서 탄성과 유연성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전분이 들어가야 또띠아처럼 잘 접히는 식감이 납니다. 전분 없이 부치면 전 같은 느낌이 나서 말아 먹기 어렵습니다.
반죽을 만든 뒤 10~15분 정도 그대로 두는 것도 추천드려요. 전분이 수분을 충분히 흡수할 시간을 주면 반죽이 더 균일해집니다.
굽는 것도 중요합니다. 팬을 충분히 예열한 뒤 올리브유를 아주 얇게 두르고, 반죽을 국자로 떠서 최대한 얇고 넓게 펴주세요. 불은 중약불로 천천히 익혀야 합니다. 센 불로 서두르면 겉만 빠르게 굳고 속은 덜 익어 콩 비린내가 남을 수 있습니다. 밑면이 고르게 익어 색이 들었을 때 한 번 뒤집고, 뒤집은 면은 너무 오래 굽지 않는 것이 수분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다 구운 또띠아는 면포나 키친타월로 덮어두면 한 김 식으면서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집니다.
한 장으로 이렇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냥 뜯어 먹어도 고소하지만, 활용 방법이 다양한 것이 병아리콩 또띠아의 진짜 매력입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채소와 단백질 재료를 넣어 랩처럼 말아 먹는 것입니다. 닭가슴살, 삶은 달걀, 아보카도, 양상추, 토마토 등을 넣으면 한 장으로도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됩니다. 또띠아에 딸기잼이나 크림치즈를 바르고 과일을 올려 간식처럼 즐겨도 좋습니다.
피자처럼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띠아 위에 토마토 소스를 펴 바르고 모짜렐라 치즈와 채소를 올려 오븐에 구우면 밀가루 없는 피자가 완성됩니다. 일반 피자보다 훨씬 가볍고 단백질 함량도 높습니다.
만들어 둔 또띠아가 남는다면 한 장씩 비닐랩에 싸서 냉동 보관하면 됩니다. 먹기 전에 전자레인지에 30초~1분 정도 돌리거나 팬에 살짝 데워주면 금방 촉촉하게 돌아옵니다.
병아리콩 또띠아는 처음 한두 번은 농도와 두께를 맞추느라 조금 어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 번 만들다 보면 자신만의 요령이 생기고, 그 과정 자체가 꽤 재미있습니다. 냉장고 한켠에 묵혀두셨던 병아리콩이 있다면, 오늘 한번 꺼내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